여행/'17 Boston

Day 1. Boston

Sunshine state 2017. 12. 24. 04:29

보스턴에왔다. 최근 힘든일이 겹치고 겹쳐서 어디로든지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한테 나 너무 힘들어서 잠깐만이라도 바람쐬고 온다고 얘기했더니 나보고 너는 역시 강한 사람이라고 그랬다. 이 상황에서 떠날 결심을 한 나는 역시 강한 사람일까?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상처였다. 우리는 대학 시절 내내 함께였지만 점점 간격은 넓어졌다. 친구는 친구대로 나는 나대로 바빴고 같은 학교 같은 전공이지만 관심사는 점점 달라졌으니까. 가끔은 나를 위로하는 말들이 더 우울하게 만들때가 있다. 너라면 잘할거야. 너는 역시 강한 사람이야. 내가 항상 잘해왔나? 나는 항상 잘해야만 하나? 내가 잘 못한다면 그건 내가 아닌가? 상처주려 한 얘기는 아니었겠지만 나는 더욱 거리를 느껴버렸다.

친구가 알고 생각하는 나는 실제 나와는 꽤 멀 것이다. 지난 주말에 친구가 놀러왔다. 어디를 갈까 계획을 짜는데 첫째날도 미술관 둘째날도 미술관에 가고 싶다 그랬다. (미술관 말고는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다했다.) 사실은 나는 미술관을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다. 최근에야 꽤 많이 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내가 보고싶은것이 있을때 혼자간다는 가정하인데 그래도 친구가 가고싶다니까 가기로 했다. 나는 그래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이틀뿐이니 좀 더 추억을 만들고 얘기할 수 있는 활동들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애매하고 힘든 첫날을 보내고 둘째날에 서로 얘기를 했다. 친구말이 내가 미술관을 좋아하는 줄 알았대.. 거의 4년전? 내가 전시표를 구해서 같이 전시를 보러 갔을 때 너무 좋았다고. 우리의 추억은 4년전에 멈춰있다. 학구적이고 열정적이고 활동적이었던 그때로. 지금의 나는 너무 변해버렸는데. 내가 어마어마한 빠순이인것도 모른다. 아니 엔시티의 존재도 모를 것. 가요는 전혀 듣지 않는 친구니까. 이제는 덕질 빼고는 내 일상을 설명할 수 없게 되었는데 아이돌을 하나도 모르는 친구한테 설명할 힘도 갖고 있지 않다.
아마 나도 친구를 잘 모를것이다. 나는 이 친구가 쇼핑같은건 전혀 관심이 없는 줄 알았거든. 얘기를 나누다보니 윈도우 쇼핑도 좋아한다고 그랬다. (그렇담 쇼핑에 관심 없는건 맞는건가?)

수요일 저녁에 급히 예매를했다. 원래는 수요일에는 떠나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밤늦게 빨래니 설거지니 이것저것 한다고 설치다가 두시간 정도 자고 아침버스를 타러 나갔다.





이렇게 일찍 아침에 집을 나선건 아마도 처음이었을텐데 이제 막 해가 뜨고 있었다. 몸은 피곤한데 기분이 좋았다. 왠지 오늘 하루가 잘 풀릴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꽤 잘 풀린 하루였다.

터미널에 내려 커피를 사고 보스턴으로 향하는 메가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교통상황으로 인해서 버스가 30분 늦게 온다고 그랬다. 왜 출근시간인걸 감안해서 일찍 나오지 않는거지..? 시내버스도 아니고 시외버슨데. 메가버스를 타려면 원하는 도착시간보다 한시간 정도는 여유를 갖고 예매하는게 낫겠다 싶었다. 실제로 한시간 늦게 보스턴에 도착했다.



버스에 타려고 줄은 서있는데 이상한 파란 패키지를 나눠줬다. 속에는 역시 파란색인 이어폰이 들어있었다. 메가버스에서 동영상 서비스도 시작한다고.. 마침 이어폰을 잃어버려서 버스에서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마침 이어폰이 생겼다. 가는 중간에 이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는데 마치 물속에 있는 것 같았다. 목소리와 반주가 따로노는 어마어마한 싸구려 이어폰이다. 이거라도 없었으면 심심했을테니까 감사히 썼지만 귓바퀴가 아파와서 더 이상 들을 수는 없었다.

메가버스는 south station에 정차했다. 숙소까지 멀지 않았다. 걸어서 10-15분정도? 먼가..? 가는 길에 차이나타운을 통과해야했다. 중국 음식점이 정말 많았다. 중국사람도 많고 은근히 일식집도 있었다. 점심은 차이나타운에서 먹으면 되겠네 생각하며 숙소에 갔다. 체크인은 4시여서 가도 체크인을 할 수는 없었지만 굳이 간건 지도도 얻고 주변에 갈만한데를 추천받기 위해서였다. 진짜 쓰레기 같은 여행책.. 뉴욕 근교 여행도 담겨있는 뉴욕 여행책을 샀는데 보스턴 추천여행지가 보스턴 프리덤뿐이다. 그리고 하버드랑 MIT? 아무리 곁다리로 들어있는 여행디디만 너무 허술하다. 어디든 여행을 할 때 그 지역의 전체적인 지도나 대표적인 곳을 파악하고 움직이는 편인데 이 여행책은 그점에서 완전 꽝이다. 버려도 아깝지 않아. 숙소 직원분 역시 보스턴 프리덤을 추천해줬지만 나는 다운타운 쪽으로 향했다.



원래는 점심으로 쌀국수 먹으려 했는데 쌀국수집 가는길에 영어로 써진 마라탕을 보고 홀린듯이 들어갔다. 마라탕 파는 곳이 있는데 안가면 내 손해지! 해물/고기/야채 중에 다섯가지를 메뉴판에서 고르고 주문하면 된다. 나는 새우, 소고기, 양배추, 시금치, 두부를 시켰다. 청경채 시키고 싶었는데 청경채를 영어로 몰라서... 근데 생각보다 두부가 너무 맛있었다. 양도 너무 많고.. 두명이서 먹었으면 딱 좋았을텐데 딱 반 남겼다. 면도 있었음 좋았을텐데 메뉴판에서 면을 못찾았네. 약간 혀가 얼얼하긴했지만 많이 안매워서 다향이었다. 미국사람들 입에 맞춘 마라탕일까.

점심을 먹고 나서 다운타운으로 걸어갔다. 트리니티 교회, 공립도서관, 프루덴셜 센터에 가보기로 했다. Trident cafe도 가보고 싶었는데 가지못해서 아쉽다. 책방에서 브런치 먹을 수 있는 곳이라던데. 다운타운을 따라 가는길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뉴욕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였다. 여행책만 봐서는 정말 재미없는 곳 같았는데 (그래서 선택하기도 했지만) 건물들도 제각각 개성있고 빡빡하지 않고 예뻤다. 그리고 이제 막 해가 지려고 하는 참이여서 햇볕이 노랗고 따뜻했다.

트리니티 교회로 가는 길에 교회들이 참 많았다. 여기가 트리니티 교횐가? 싶어서 지도를 보면 다른 교회였다. 트리니티 교회가 있는곳은 넓은 광장이 있고 맞은편에는 보스턴 공립 도서관이 있다. 공터에는 스케이트 보드 타는 남자애들과 몇몇 관광객뿐이었다. 잠시 보드타는 애들은 보다가 교회안으로 들어갔다. 관광객은 돈을 내라길래 그냥 나왔다. 돈내라는 교회는 처음이야..

교회를 나오면 반대편에 바로 도서관이 보인다. 미국 최초의 도서관이라고 했던 것 같다. 뉴욕 도서관이랑 비슷하게 생겼다.



사진찍기가 머쓱해서 무음 카메라를 다운 받았다. 그리고 화질을 포기했다. 조용하고 사람들이 제각각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나도 시간이 좀 았었다면 여기서 다이어리라도 썼을텐데. 관광객으로 간 건 맞지만 왠지 관광객이 아닌 것처럼 지내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이런 시설들이 일상인 사람들을 볼때. 그 사람들이 부럽다가도 나도 이렇게 미국에 와서 이런 저런것들을 볼 수 있는것도 행복이겠지 싶었다.

여행을 가면 원했든 원하지 않던 전망대에 간 경우가 많다. 처음으로 간 곳은 오클랜드 스카이 타워. 전망대의 레스토랑이 1시간에 한바퀴 화전을 한다. 그래서 한시간동안 식사하면 가만히 앉아서 오클랜드 시내 야경을 한바퀴 볼 수 있다. 혼자 여행을 갔을때 손바닥 만한 스테이크를 천천히 한시간 동안 씹으며 전망을 구경했다.(그리고는 나와서 햄버거를 사먹었다..) 그리고 파리에서는 민박 아주머니가 옆방 사람들 몽파르나스 타워에 야경보러 간다고 나도 가라고 등떠밀어서 어째 보러갔다. 보스턴에은 프루덴션 타워에 스카이워크가 있다. 갈 생각을 없었는데 왠지 날씨도 맑고 노을이 예쁘게 질 것 같아서 올라가보기로 했다. 타워에 올라가니 역시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려나..? 어스름 할 때가서 야경까지 한시간정도 알차게 구경했다. 오늘따라 초승달은 더 야위고 하얘보였다. 아침에도 해뜨는걸 봤는데 이렇게 예쁘게 해지는 모습도 봐서 오늘 하루가 온전히 마무리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위어서 보니 보스턴은 도로와 구역이 잘 나뉘어져있고 반듯반듯한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 기대를 안하고 온 보스턴이어서 더더욱 마음에 들었을지도 모른다.

저녁은 yelp로 맛집을 찾다가 luke's lobster에 갔다. 보스턴은 바다랑 접해있어서 해산물이 유명하다고! 생각해보니 바다를 못가봤네 아쉬워라.. 어쨌던 랍스터롤집인데 최근에 랍스터를 많이 먹어서 크랩롤이랑 클램차우더 스프, 콜라를 시켰다. 별점을 주자면 5점 만점에 별 여섯개다 너무 맛있어.. 정말 최고인 부분은 빵 구워진정도랑 따뜻한 정도가 너무 완벽했다는 것. 게살은 게살이니까 약간 짠 듯 싶었지만 따뜻하고 버터향 나는 빵이랑 너무 잘어울렸다. 클램 차우더도 속에있는 조갯살이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게 속도 든든하고 완전 짱.. 랍스터롤 말고 크랩롤 먹은거에대해 후회는 안하지만 랍스터롤도 당연히 맛있었겠다 싶어서 아쉽다.

한국에서는 랍스터 먹을 기회도 많지 않을 뿐더러 먹어도 비싼 게느낌이었는데 여기와서 자주먹으니까 생각이 바꼈다. 나는 우선 입안에 가득차는 느낌을 좋아하는데 랍스터의 탱글탱글한 식감이 너무 좋다. 입안 가득 넣고 먹으면 이것보다 행복한 느낌이 없다 진짜. 한국가면 아쉬워서 어떡하지 조만간 또 먹으러 가야겠다. (사진은 카메라 사진 올리면...^_ㅠ)

저녁을 먹고 숙소에 체크인을 했는데 옆 침대 사람이 한국인이었다. 그래서 얘기를 조금 했는데 샤이니 팬이라고.. 보스턴에 와서 매일 교회에 가서 기도했다고 한다. 사람 운명이 어떻게 이럴수가 있을까. 다음 여행지는 뉴욕이라길래 연락처를 주고 받고 뉴욕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숙소에 채크인하고 시간이 조금 남길래 근처 공원인 보스턴 커먼으로 향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봤을때 알록달록 트리장식을 한 곳이 이 곳 같았다.

가까이서 트리 장식을 봤는데 생각보다 예쁘진 않았다. 좀 허술한.. 그나마 소리가 좀 들리고 화려한 곳에 갔는데 아이스링크당이 있었다. 약간 센트럴파크 안에있는 울먼 링크 같았는데 그에비하면 조금 (많이) 소박했다. 급하게 나오느라 장갑을 못가지고 나왔는데 손이 얼어서 터질것만 같았다. 사진 한 장 찍고 손 녹이고 한장찍고 또 녹이고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공원을 걸으면서 맘에드는 나무도 생기고 겨울 찬공기를 맘껏 들이마셨다. 그리고 낮은 건물들과 하늘과 트리 장식된 나무들을 보면서 혼자 보스턴의 크리스마스를 느꼈다.

보스턴 커먼에서 길을 건너면 호수가있다. 알고 간건 아니었지만. 걸어가다보니 호수가 있었다. 날씨가 근래 많이 추웠는지 호수 표면이 꽁꽁 얼어있었다. 그 호수 위에 한 가족이 쪼르르 줄지어서 가장자리를 걷고 있었다. 얼음이 깨져도 누군가는 구해줄 수 있겠구나. 구해줄 사람이 없는 나는 나대지 말아야지..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두 주인공이 (아마) 얼음위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이었는데 나도 누군가가 있었으면 한번해보자고 했을것이다. 혼자 하기엔 1. 얼음이 깨지면 구해줄 사람이 없고 2. 미친사람처럼보이기 딱 이어서 그만뒀다. 그저 셀카 몇장 남기고 말았다.

숙소는 6인실이었는데 들어가니 한국준이 한명 더 있었다. 아까 얘기했던 샤이니 팬분도 조금있다가 들어왔는데 둘은 이미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처음 뵌 분이 보스턴 미술관 표를 주셨다. 여기는 일주일 내에 재방문이 가능하다고.. 다음날의 일정이 생겨버렸다. 챙겨주신게 감사해서 나도 뉴저지왕복 버스 티켓을 드렸다. 뉴저지에서 야경 꼭 보세요.. 침대에 누워 두사람이 얘기하는거도 듣다가 맞장구도 치다가 다음날 계획도 세우다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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