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8

180209 이한열 기념관

Sunshine state 2018. 2. 9. 17:03

 6월의 학생회관은 향 냄새가 났다. 학생회관에 앞에 들어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면 '한열이를 살려내라'라는 문구와 함께 향이 준비되어 있었다. 매일 오고가기 바빠서 한번도 향을 피워 본 적은 없지만 그 이름은 익숙하다. 학생회관 뿐만이 아니었다. 정문에도 그를 기리는 장소가 마련되곤 했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 들은건 아마 1학년 때 듣는 기독교 수업 시간인 것 같다. 학교를 돌면서 교수님이 언급한 곳의 사진을 찍어오는 과제가 있었다. 벌써 5년도 더 된 일이라 가물가물하다. 지금은 위치가 옮겨진 것으로 아는데 공터에 이한열 열사를 기리는 장소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그 이름이 조금씩 익숙해져 간 것 같다. 


 수업시간에 교수님도 한번 말씀하신 것 같다. 15년 여름에 공과대학 공사과정에서 발견한 이한열 열사가 쓰러지셨을때 그를 받치고 있던 깃발이 우리과 깃발이었다고 한다.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그래도 학교를 다니면서 한번쯤은 꼭 이한열 기념관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안가게 되는 건 사실인 듯하다. 머릿속에서 까맣게 잊어버린 채 나는 졸업을 했다. 


 어제 티비를 보는데 강동원 인터뷰가 나왔다. 역시 미남이 최고지, 말하는 미남은 더더욱 최고지 하면서 인터뷰를 봤는데 영화 1987에 출연했다고 했다. 그의 역할은 이한열인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잊어버리고 있던 이한열 기념관이 생각이났다. 그리고 오늘 신촌에 올 일이 있어서 처음으로 이 곳을 방문하게 됐다. 

 

 

 

 

 이한열 기념관. 위치는 좀 애매하다. 신촌에 오면 이대나 연대 방향으로 가기때문이다. 기념관은 홍대랑 서강대교 방면의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엄청 멀지는 않아서 금방 갈 수 있다. 주변은 조용하다. 1층은 사무실, 2층은 상담센터, 3층은 특별전시, 4층이 상설 전시실이다. 나는 먼저3층의 기획전시실로 올라갔다.

 

 

 

 

 

 3층 기획전시실 입구. 계단을 올라가면 3층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3층에서 나선형 계단을 따라가면 4층 상설 전시실이 나온다. 이한열 열사의 유품 및 유월항쟁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가방이 무거워서 짐을 맡길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전시실은 작다. 사진에 보이는게 전부. 하지만 차근차근 전시실을 돌아보니 꽤 많은 시간동안 머물러 있었다.

 

 

 

 

 강동원이 인터뷰한 영화가 바로 '1987' 이다. 그리고 그 영화에 사용한 소품전시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아마 영화 촬영전에는 빈 공간이었겠지?) 이 곳에 올때까지만 해도 나는 강동원이 주연 인 줄 알았는데 특별출연이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박종철 열사로 부끄럽지만 나는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전시를 둘러보면서 영화 1987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1987 소품 이한열의 옷과 운동화>

 

배우 강동원이 이한열의 피격 순간을 연기할 때 입었던 티셔츠, 청바지, 운동화.

손수건은 강동원이 처음 등장하는 시위 장면에서 얼굴을 가렸던 것이다.

왼쪽은 영화를 위해 제작된 최루탄 총신과 SY-44 최루탄, 휴대용 최루탄 일명 '사과탄', 전경의 군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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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강동원의 사인도 붙어 있다.

 

'미약하지만 역사에 진 빚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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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서 그는 배우는 시대를 연기한다고 했다. 어쩌면 당연한 이말이 특히 와닿았던 것 같다. 그는 배우라는 직업에서 시대를 연기하고 표현하고 의미를 찾는 것이다. 나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올바르게 혹은 가치 있게 사는 것일까? 어떤 직업을 갖게 되던지 의미를 찾는건 참 중요한 일인 것 같다. 나에게, 그리고 사회에 중요한 그 의미를 찾는다면 그 일을 좀 더 행복하게 해나갈 수 있을텐데. 최근에 이런 저런 고민들을 하면서 내 삶이 끝나기 전에 그 의미를 찾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20대, 특히 20대 초반에 나는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찾지못한 나를 꾸짖고 옥죄어 왔는데 이제라도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천천히라도 그 길을 발견하고 찾아가고 싶다.

 

 

 

 

 

촬영 때 입었다던 티와 바지 그리고 손수건. 그 옆에 실제로 이한열 열사가 입었던 옷이 전시되어 있는데 상당히 비슷했다.

 

 

 

 

<압수 수색 검증영장>

 

이한열이 숨을 거둔 7월 5일 새벽, 병원으로 들이닥친 경찰이 내민 압수수색 검증영장.

'압수할 물건 : 이한열의 사체 1구'라고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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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군 부검 결과 이물질 규명 중간보고>

 

영장 옆에 같이 전시되어 있다.

 

 

 

<경영학과 티셔츠와 운동화>

 

이한열이 경찰의 직격 최루탄에 피격될 당시 입고 있던 옷과 신발이다.

오염과 열화 등으로 훼손이 심해져가던 유물이었으나 2015년 복원, 보존 작업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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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지 시위 당시에 생긴 얼룩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혈흔이고, 타서 생긴 구멍들이었다. 티와 바지만으로도 그 상황이 머릿속에서 그려져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마음이 아팠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당시 기자가 찍은 사진들.

 

 

 

 

6월 민주항쟁에 대한 간략한 설명.

 

 

 

 

당시 신문 기사와, 읽기 편하게 다시 쓰여진 기사도 걸려있다.

 

 

 그리고 모니터로 영화 1987의 인터뷰와 트레일러 등이 나온다. 생각보다 꽤 길지만 잠시 멈춰서 볼 가치가 있었다.  등장인물의 모티브가 된 실제 인물들과 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인사가 함께 나오는데 이게 가장 인상깊다. 이제 30년 정도가 지난 가까운 역사지만 잊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역사기에 그런 인터뷰도 가능했지 않았나 싶다.

 

 내가 학교다니면서 가장 어려웠던 공부는 역사다. 뭔가 서사나 흐름을 파악을 잘 못하는 것 같다. 중학교때나 고등학교 1학년때는 조금씩 배우긴 했지만 이과로 배정되면서 역사랑은 완전 멀어졌다. 아니 나는 과장하면 국사 공부하기 싫어서 이과를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대학에 와서도 전공 자격증 시험은 붙었지만 한국사 시험은 떨어졌다.. 사람 머리가 이렇게 극단적일 수 있을까 하지만 한해 한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래도 국사나 근현대사를 비롯한 역사는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진다. 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궁금해졌다고 해야할까. 아직 내 스스로가 나를 잘 모르겠어서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나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궁금하다. 사람사는 모습이 거기서 거기라고 느껴질 때가 있는 반면 나는 평생 남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요새 동생이랑 함께 사는데 너무 힘들다. 어떻게 나랑 1부터 100까지 반대일까. 스트레스가 맥스를 찍었다. 회의가 들기도 한다. 내 동생이랑의 갈등조차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내가 무슨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역사에 관심을 가진다는 걸까. 하지만 전시를 보러 다니고 무언가를 조금씩 배워나가는 경험들이 나와 남을(특히 동생을....) 이해할 수 있는 과정이 되리라고 믿는다. 조금씩 역사 공부를 해야겠다. 이렇게 To do 리스트 항목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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